본문 바로가기

Press

작가의 손맛이 느껴지는 화랑

작가의 손맛이 느껴지는 화랑



[우리시대 파워갤러리] (12) 박영덕 화랑

유명세 떨어지지만 작품에 열정 쏟는 작가 찾아 알리기 앞장

"작가와 화랑은 가족 아닌 비즈니스 관계여야" 박영덕 대표 지론

“전 작가의 손맛이 느껴지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전람회나 아트페어를 많이 해왔지만 결국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작품의 공통분모는 공이 많이 들어갔다는 거죠. 철학이요? 이미 유명해진 원로작가가 철학을 담아 한 호흡으로 그려낸 작품은 그간의 작가의 배경이 반영된 것이죠. 하지만 그 이전에는 작가의 손맛이 보는 이에게 감동을 주기 마련입니다.”

박영덕 대표는 갤러리 내부에 전시된 몇 작품을 가리켰다. 캔버스에 모래를 일일이 붙여 그 위에 그림을 그려낸 ‘모래 화가’ 김창영 화백과 얼굴의 잔털까지도 표현해내는 한영욱 화백의 인물화가 특히 그랬다.

작품에 대한 박 대표의 취향은 곧 박영덕 화랑을 관통하는 운영철학으로 이어졌다. 당장은 시장에서 소외되어 있지만 작품에 에너지를 쏟아내는 작가들. 그들을 찾아내고 시장에 알리는 것이 화랑의 본분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 같은 생각이 다져진 건, 박영덕 화랑을 오픈하기 훨씬 전부터다. 잘 알려졌다시피 박 대표는 갤러리 현대의 창업주 박영자 회장의 동생이다. 덕분에 1985년부터 갤러리 현대의 전신인 현대화랑에서 크고 작은 실무를 맡아 처리했다. 당시 현대화랑은 국내외 유명 작가들을 위주로 전시했고, 이후에 생긴 갤러리 현대에서는 젊은 작가들의 대관 전시가 대부분이었다.

“가만 보니, 인기도나 유명세가 떨어져서 시장에 소개되지 않는 작가들이 많더군요. 그래서 그 틈을 제가 메워보고자 했습니다. 또 국내에서는 인기작가 위주로 팔리니까 해외 판로를 찾으려고 박영덕 화랑을 오픈한 후에는 줄곧 해외 아트페어에도 참가했지요.”

시카고 아트페어를 시작으로, 독일의 쾰른 아트페어, 프랑스의 피악, 일본의 니카프 아트페어 등에 작품을 출품했다. 1년 동안 여덟 곳의 아트페어에 참가한 적도 있다. 이 같은 경험을 토대로 그는 아랍에미리트의 샤르자 비엔날레에서 두 차례 한국관 커미셔너로 활동하기도 했다.

“과거의 아트페어는 이벤트 식이었지만 이제는 작품 판매의 장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죠. 미국이나 유럽에도 도시마다 아트페어가 생겨났고요. 독일 하면 옛날엔 쾰른 아트페어가 거의 유일했는데, 이젠 베를린, 프랑크푸르트도 잘 알려졌지요.”

박 대표 역시 지난 2001년부터 매년 상반기에, 아트페어인 한국현대미술제(KCAF)를 예술의 전당과 공동기획하고 있다. 1995년부터 7년간 신진작가 공모전을 해왔지만 작가들이 많아진 지금은 발굴보다 시장에 소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런 이유로 오는 9월 중순에 열리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서도 가장 큰 부스를 맡아놨다. 김창영, 윤우승, 이호련, 김경렬, 김세중, 박성민, 장기영, 한영욱 등을 비롯해 박영덕 화랑과 인연을 맺어온 대부분의 작가들의 작품이 부스에 걸린다.

‘작가와 화랑은 가족이 아닌 비즈니스 관계여야 한다’는 것이 박 대표의 지론이다. 각자의 발전을 위해서 서로 요구하고 요구 받을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물론 그것은 작가에 대한 존경심이나 각별함과는 별개의 문제다. 박 대표에게는 현대화랑에서부터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백남준 작가가 그런 존재다.

“말 그대로 천재셨어요. 10년~20년을 내다보신 작가였으니까요. 당신이 비디오 작업을 하셨지만 몇십 년 후에는 사진이 미술계에서 강세일 거라고 하셨거든요.” 언젠가 백남준 작가의 오랜 동료인 존 케이지와 샤롯 무어만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박 대표는 우연하게 백 작가와 함께 있었다.

너무 무리한 작업으로 수명을 단축했다면서 씁쓸해하던 백 작가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다. 이후 백 작가 역시 말년에 작업에 많은 에너지를 쏟다가 병상에 눕고 세상을 뜬 것이 박 대표는 못내 안타깝다고 했다.

그동안 미술계는 많이 변했다. 전성기를 맞은 아트페어뿐 아니라 미술에 투자 개념이 들어서면서 개인이 아닌 그룹이 소수 작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구매하는 경향도 생겨났다. 이러한 경향에 호불호를 밝히진 않았지만 아트딜러인 박 대표는 우리 미술시장에 대한 이런 바람으로 갈음했다.

“이런 풍토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예전에 쾰른 아트페어에 3~4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참가한 적이 있죠. 첫해에 한 작가의 작품을 눈 여겨보던 어떤 분이 몇 년 후에 망설임 없이 사는 모습을 봤죠. 우리가 적금하듯이, 그들은 집의 분위기를 고려해서 작품을 고르고, 그에 맞게 돈을 모으죠. 그림 감상이 생활화되어 있는 애호가층이 두텁다는 얘기겠지요. 우리도 부자만 그림을 사는 게 아닌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박영덕 화랑/center> 1993년 청담동에 개관한 박영덕 화랑은 한국미술계를 선도하는 갤러리 중 하나로 꼽힌다. 1995년을 시작으로, 매년 10여 회의 기획초대전을 비롯해 해외 주요 아트페어에 참가해 국내외 미술교류에 앞장서고 있다.

동시대 작가들의 조각과 회화, 사진, 비디오 등의 작품을 주로 다룬다. 그동안 박영덕 화랑에서 열린 주요 초대 작가로는, 백남준, 김창열, 조성묵, 윤형근, 황호섭, 박서보, 윤명로, 김창영, 에릭 오어, 마이크 앤 덕 스탄' 등이 있다.

주요 전시회로는 개관전인 '의식과 체험의 다양성', 그리고 평론가들의 추천에 의한 '기대와 예감', 암스테르담의 어페르트 갤러리와의 '네덜란드작가 2인전', 뉴욕의 킴 포스터 갤러리와의 '뉴욕작가 4인전', 사진으로 서울을 미학적으로 재현해 낸 '공공정보-디스토피아 서울', '언플러그드 씨어터' 등이 있다. 세계원자력평화기금 조성을 위해 작가들로부터 작품을 기증받아 작품을 IAEA에 전달한 '평화를 사랑하는 111인전'도 호평을 받았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

사진=임재범 기자 happyyjb@hk.co.kr

한밤중에 냉장고를 열다~[2585+무선인터넷키]

[ⓒ 인터넷한국일보(www.hankooki.com), 무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