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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cism/2008 김윤섭 글

장기영의 꽃은 ‘시간의 흔적이자, 열정이며, 여백’이다

장기영의 꽃은 ‘시간의 흔적이자, 열정이며, 여백’이다

글_김윤섭 (미술평론가,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



“잘 그렸다”

참, 잘 그렸다! 장기영의 꽃 그림을 처음 본 사람이라면 예외 없이 이런 감탄사가 먼저 나올 것이다. 손으로 만지면 그 촉촉함까지 전해질 것 같은 생생함이 놀랍다. 화가가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야 너무나 당연한 이치겠지만, 장기영의 집요함은 지나치리만큼 완벽에 가깝다. 그의 그림을 처음 보게 된 것은 2004년 한 아트페어의 개인부스에서였다. 그때의 첫인상 역시 잊을 수가 없다. 동백꽃으로 기억된다. 진노란 꽃술에 포커스가 맞춰지고, 주변엔 붉은 꽃잎이 화면가득 넓게 휘두른 장면이었다. 거의 100호에 가까운 크기의 그림이 어찌나 강렬한 포스를 뿜어내던지 마치 화면 전체에 불이 붙은 것처럼 농염한 붉은 기운이 참으로 실감났다. 단지 누구나 그림직한 꽃만으로도 이런 강렬한 흡입력과 매력을 발산할 수 있구나, 하는 점을 새삼 깨우친 순간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는 꽃만을 사랑한다. 그의 일편단심 꽃을 향한 구애는 벌써 강산도 변화시킨다는 10여년이 넘고 있다. 짧지 않은 시간을 천착해온 장기영의 꽃그림은 여느 것과 무엇이 다를까? 사실 꽃이란 소재가 그림의 중요한 소재로 부각된 것은 미술사적으로도 아주 오래되었다. 그만큼 꽃이 그리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에게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비교 미술학적으로 볼 때 서양에서는 17세기부터 꽃이 등장하는 정물화가 그려지기 시작했는데 동양의 그것과는 다소 대상을 바라보는 차이가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그 대상들이 거의 꺾여 죽어가는 상태로 연출된 장면이라면, 동양은 그렇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자연 상태 그대로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바로 동양화의 기운생동 사상과 연관 있지 않을까 싶군요. 저는 비록 시각적인 재현방법은 서양적이지만 그 내면은 동양적인 면에 가깝게 다가가려 노력합니다.”

그래서일까, 그의 말처럼 작품에 등장시킨 꽃은 화병에 꽂혀 있거나 꽃다발로 놓여 있지 않다. 꽃의 부분이 클로즈업 되었거나 나뭇가지에 꽃이 핀 장면 일색이다. 모두가 화려하게 꽃망울 터뜨린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동양의 문인화가 꽃의 생태를 간결한 필흔으로 묘사해 상징성으로 보여준다면, 장기영은 가장 생생한 꽃의 표정을 극사실적인 집요한 붓 터치로 진한 생명감을 자아낸다. 이는 장기영이 구사하는 포토리얼리즘의 개가이다.

흔히 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때 사진을 찍은 것을 참고한다는 사실을 숨기려하는 경우가 많다. 장기영은 좀 다르다. 오히려 사진을 참고하는 점이 본인의 작업과정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그의 석사논문 제목이 「포토리얼리즘 회화에 있어서 사진의 역할에 관한 연구」라는 점을 봐도, 그의 작품이 사진작업과 얼마나 깊은 연관성이 있는지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논문 내용 중에 ‘회화에서 비밀스럽게 사용되던 사진이나 기계적인 메커니즘을 적극적으로 드러냄과 동시에, 사진에서 보여 지는 내용들을 재구성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화면에 표현함으로써 보다 확장되고 새로운 시각적 체험을 느낄 수 있다. 사진이미지를 작업에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을 통해 카메라의 기계적인 눈의 기술과 회화와의 긍정적인 결합을 모색하고자 한다. 즉 회화 속에 첨단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술-카메라의 눈-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요소를 찾아내는데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란 대목은 그의 작품세계를 함축한 내용이다.

장기영의 꽃그림이 여느 것과 다른 점이 바로 이 부분에서 출발한다. 작품에 나타난 꽃이 사진이미지의 재현과 회화적인 재해석을 통해 ‘장기영식 극사실적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우선 작품의 기본 모티브가 될 대상인 꽃을 사진으로 근접 혹은 접사촬영한 후 그 이미지를 토대로 캔버스 화면에 스케치를 하고 유화물감으로 채색작업을 거쳐 완성한다. 물론 이미지를 얻기 위한 기초 사진작업 이후의 모든 작업은 순수 노동집약적 수작업이다. 분명한 것은 사진의 이미지를 컴퓨터로 옮긴 뒤 프린트 한 후에 색칠하는 일부 전사작업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작업과정이다. 사진의 기계적 요소로써 대상의 사실적 표현의 극대화에 충실하고 있다면, 회화적 제작과정에선 꽃이 줄 수 있는 환영적인 요소에 집중하고 있다. 즉 꽃의 시각적인 이미지 재현 이상의 의미를 보여주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지극히 사실적인 꽃그림을 통해 무형의 환영성까지 가미해 새로운 회화세계를 구현하고자 하는 작가적 바람을 발견하게 된다.

살아있다

어떤 명작도 자연을 넘을 수는 없다. 그리고 세상엔 정지된 생명은 없다. 움직임이 있으면 생명이다. 적어도 살아있는 것은 움직인다, 그래서 꽃이 핀다는 것은 식물의 움직임 중 가장 황홀하고 돋보이는 동작일 것이다. 꽃은 몸과 의지와 영혼이 하나 되는 가장 화려한 정점의 표상이다. 장기영은 그런 꽃의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꽃의 형상을 통해 진한 생명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간간히 이슬 맺힌 형상으로 등장하는 영롱한 물방울은 그가 꽃에 부여할 수 있는 생명성의 상징이다.

꽃잎도 스스로 빛을 낸다. 우리의 눈동자가 스스로 빛을 내기에 빛을 볼 수 있는 것처럼, 꽃잎 역시 스스로 영롱한 햇빛의 색을 온 몸으로 끌어안아 자기 빛깔을 내뿜는다. 꽃을 보며 영적인 충만감과 생명의 환희를 느낄 수 있는 것은 곧 꽃잎 이면에 세상의 빛깔이 스며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포토리얼리즘을 대표하는 극사실주의 미술가 척 클로스(Chuck Close)가 인물의 주름에 인생의 흔적을 각인시켰다면, 장기영은 꽃의 다양한 표정을 통해 지난 시간의 열정을 그려내고 있다. 장기영에게 꽃은 살아 있음으로써 행복한 지난 시간들의 초상이며 화음이다. 그래서 장기영의 꽃에서는 단순히 예쁘다거나 화려하다는 수식어 이외에 우리가 밟았던 지난 세월의 깊이가 함께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소중한 기억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멈춘 것과 같다. 그 멈춘 시간 속에선 애틋한 그리움의 무게만큼 향기가 난다. 장기영의 꽃에서도 그런 ‘특별한 향기’가 묻어난다. 처음엔 그저 그런 꽃으로 볼 수 있겠지만, 잠시 바쁜 눈길을 멈추고 바라보면 이내 그 안에서 특별한 끌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분명 평범한 꽃인데 도대체 촌스럽거나 구태의연함 없이 오히려 더없이 따뜻하고 친숙하게 다가오는 그 이유가 뭘까? 그 향기가 콧속 천장의 점막에 닿을 때쯤이면 여지없이 심장의 고동소리도 가빠진다. 마치 그의 꽃이 ‘아주 특별한 기억’을 자극하는 타임캡슐을 내 몸속 깊숙이 찔러 넣고 간 느낌이다.

생각하다

장기영은 꽃을 모티브로 작업하는 현재 활동하는 젊은 작가 중 대표급 작가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의 꽃은 많은 작가들이 다루는 경우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꽃의 단순한 아름다움이나 향기에 대한 것이 아니라, 생명의 순환을 이야기한다. 작가 스스로 꽃을 그리는 과정을 동양적인 정신성이나 윤회사상과 연관된 철학관을 구현하는 방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꽃은 보면 볼수록 근원적인 생명력과 서정적 감성을 진하게 자극한다.

“하늘을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는 꽃의 이미지는 우리들의 심상, 즉 자아의 표상으로 등장하는 겁니다. 절정에 이르러 활짝 핀 꽃. 그것은 단순하게 만개한 꽃의 아름다움이라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꽃이라는 주제가 생명의 변태와 시간의 변화를 드러내줄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화려하기 그지없지만 곧 덧없이 사라져버릴 아름다움. 그리고 생명…. 꽃을 대상으로 선택하면서 작품 속에서 시간과 생명에 대한 다소 차가운 관조의 시선을 담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그것들이 품고 있는 이면에는 영원성과 소망, 기원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장기영의 작품을 바라볼수록 ‘시간의 여백’에 길들여지는 느낌이다. 이는 꽃의 표상을 받쳐주고 있는 바탕의 하늘이 주는 느낌이다. 이전에는 사물의 본질을 묘사하는데 충실했다면, 최근엔 상황의 재현 즉 해방감, 공간의 확장, 여유로운 사색의 장 등을 함께 표현하고자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보통 선물 혹은 축하의 대상이란 꽃의 1차적인 해석을 넘어, 하늘을 배경으로 함으로써 염원의 대상으로 또 다른 격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를 가리켜 ‘나의 꽃은 모든 이의 소망을 대신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장기영의 꽃그림엔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스몄다. 바로 그 여백을 통해 ‘시간의 공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기영의 작품은 감성적인 열정과 이성적인 사유의 장을 동시에 품고 있으며, 유기적인 생명성을 잉태한 장으로 새롭게 태어난다.